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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문화 유산 존중하는 '슈퍼 아메리칸' 돼야"

국무부의 경제 및 에너지 부서 내 교통정책실에서 국제 교통 문제를 담당하는 줄리아나 김(43)씨는 모든 미국인들의 안전한 해외 항공 여행을 책임지는 막중한 임무를 갖고 있는 외교관이다. 국무부에 들어온 지는 벌써 12년. 변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 정신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첫 직장으로 학교 교사에서 출발해 베트남에 있는 국제 비영리단체 책임자를 거쳤다. “시카고대에서 행동과학 학사와 교육학 석사를 마친 후 시카고에서 교사가 됐습니다. 12년을 가르쳤죠.” 시카고 교직생활을 떠나 베트남에서 교편을 잡은 것만도 도전이었다. 그러나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한 지인의 권유로 현지 비영리단체에서 일을 하게 됐다. 그리고 3년간 이 단체를 이끌면서 틈틈이 각국에서 파견된 대사들의 부인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게 됐다. '외교관'이란 직업에 도전하는 계기가 될 줄은 꿈에도 모르던 때였다.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면서 견문이 넓은 대사 부인들이 제게 ‘국무부에서 일한다면 좋은 외교관이 될 수 있을 거다’, 아시안계 외교관이 늘어난다면 미국 외교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며 항상 조언을 해주곤 했었어요. 그 계기로 국무부에 지원하기로 결심했죠.” 베트남에서 온라인을 통해 국무부 입사 시험에 도전했고 그는 미국을 대표하는 외교관이 됐다. 지금까지 영사 등 외교 업무로 다닌 나라만 60여 개국에 이른다. 그 중에서도 외교관으로서 파견된 가장 첫 공관은 서울에 있는 미국대사관이었다. “전 서울에서 태어났어요. 4살 때 가족과 시카고로 이민을 오기까지 미국대사관 근처에서 살았었죠. 그런데 수 십년 뒤 미국대사관에 외교관으로 나갔을 때 감격은 컸죠. 2년 임기 동안 한국계 미국 외교관으로서 양국 외교를 위한 역할이 중요성하다는 것도 알게 됐고요.” 특히 한미 양국의 사고 방식과 문화적 차이로 오해가 있을 경우 자신이 양쪽 문화를 이해하기 때문에 양방향으로 제대로 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슬로베니아에서 물류 담당과 아프리카 말리에서 기아와 말라리아, 테러리즘 문제를 다루기 위해 각각 2년 동안 현지 공관에 파견되기도 했다. 해외에서 살아 보고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는데다 다른 문화를 배우는 것에 열정적인 그의 성향은 외교관으로서 더할 나위 없이 찰떡궁합이었다. “외교관이란 직업이 더욱 매력적인 것은 다른 나라에 미국을 대표해 미국을 소개할 수 있다는 거에요. 게다가 아프리카 등 세계 가난한 어린이들을 도울 수 있었고요. 미국의 선진화된 비즈니스 전략을 소개하고 민주주의 정책을 소개했죠. 좋은 교육을 받고 다시 사회에 환원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제 삶의 축복입니다.” 하와이대에서 경영학석사(MBA)를 취득한 그는 세계 각국에서 미국 기업들의 경제 활동을 지원하는 임무도 흥미롭다고 했다. 또 다른 매력은 국무부는 다양성이 존중 받고 장점이 되는 조직이라는 점이다. “한인 혹은 아시안 정체성과 언어 능력은 매우 큰 이점입니다. 한미 외교관계에도 다리가 되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도울 수 있고요.” 그는 미국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한인 후배들을 위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작은 눈과 작은 키라 해도 성공과는 무관합니다. 굳이 한인이 아닌 척 할 필요가 없어요. 내 문화 유산과 뿌리에 자부심을 느낄지 부끄러워할 지는 자신의 선택에 달렸어요. 그러나 내 문화 유산을 존중하고 미국 문화를 받아들이면 ‘슈퍼 아메리칸’이 될 수 있어요. 기회를 찾아보세요. 한인으로서, 아시안으로서 기회는 열려 있습니다.” 이성은 기자

2011-08-31

"한 때 '바나나' 꿈꿨지만 한인 자랑스러워"

세실리아 최(32)씨는 국무부 내 농업무역부서에서 미국 농산물 수출 진흥업무를 맡고 있는 무역과 경제 부문 전문가로 꼽힌다.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도 불구, 최근 미국의 자유무역협정(FTA)과 환태평양 전략적 경제동반자 협약(TPP) 대표단에서도 활약했던 그다. 특히 식품안전 문제와 식물유전공학과 관련한 국익 문제는 그의 전문성 중에서도 주종목이라고. 최 외교관은 LA에서 태어나 캘리포니아주의 클레어몬트 맥케나 칼리지에서 경제학과 국제관계학을 전공하고, 런던전경대(LSE)에서 아프리카 국가들의 코코아 생산 부문에 초점을 맞춰 개발학 석사학위를 받은 재원이다. 뉴욕의 투자회사를 거쳐 국무부에 첫 발을 디딘 지 벌써 6년. 한미FTA를 적극 지지한다는 그는 “FTA는 양국을 더욱 밀접하게 엮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윈윈”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은 다른 나라가 수 십 년 만에 할 수 있는 일을 몇 년 만에 해내는 역동적인 나라입니다. 전자기기나 IT분야 등 경제성장이 그렇고 반기문 UN사무총장이나 한류의 인기만 봐도 알 수 있어요.” 그는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주한 미국대사관에 파견됐었다. “1990년대 말 한국에 놀러 갔을 때만 해도 한국말을 못하면 사람들이 답답해 했어요. 지금은 완전히 달랐어요. 제가 한국어에 미숙하자 바로 영어로 얘기하는 국제 도시로 변해 있었거든요.” 한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이민계 가정에서 자란 이민 2세로서의 경험은 다양화를 추구하는 국무부 문화에 적격이었다고 했다. “한인처럼 이민계는 어려서부터 가정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외교관 역할을 하고 자랍니다. 가정에서 이민 1세대인 부모님께 미국 문화를 알리고, 학교에서 친구들에게는 한국 문화와 가치를 소개하거든요. 그래서 외교관으로서의 역할이 제게는 더 자연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2006년 터키로 파견됐을 때의 일이다. 당시 그는 이스라엘과 전쟁으로 혼란스러웠던 레바논에서 미국민들을 안전하게 탈출시키는 임무를 맡았다. 밤낮 없이 비상 근무가 이어지고 있었다. “인력도 부족했고, 직원들도 지쳐 있었어요. 돌아가면서 당직을 섰는데, 이 때 한국 문화를 활용했어요. 합리적으로 순서에 따라 무조건 당직 근무를 돌리는 게 아니라,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필요에 따라 근무 순서를 유동적으로 바꿨죠.” 때로는 합리와 논리보다 이해와 양보를 중시하는 한국의 동양 문화가 리더십에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코리안’이란 배경에 자부심이 가득해 보이는 그는 한 때 한인이나 동양인이라는 정체성을 부인했었다고 깜짝 고백을 했다. 그는 한 때 '바나나'를 꿈꿨다고 했다. “바나나 아시죠? 겉은 노랗고 속은 하얗고요. 한인이나 아시안이기 전에 그냥 철저한 미국인이 되고 싶었었죠. 친구들이 코리안 이냐고 물으면 미국인이라고 응수했었죠.” 그랬던 그가 한인의 정체성을 깨닫고 자부심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대학에 진학하면서다. “그 전에는 저를 아시안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어요. 대학에서 한인 친구들을 사귀면서 한인 정체성과 한국 문화의 소중함에 눈을 뜨게 됐어요.” 그는 후배들이 자신보다는 빨리 그 가치를 깨닫기 바란다고 했다. “한국계, 소수민족이라는 배경은 특히 국무부에서 무조건 플러스에요. 스스로를 (백인 사회에)껴 맞추려고 하지 마세요. 있는 그대로 한인의 모습으로 우뚝 서세요. 한국계라는 배경은 큰 자산입니다.” 그는 기회가 된다면 또 다시 한국으로 파견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성은 기자

2011-08-31

"한국출신에 자부심 갈수록 커져"

한국을 빛내는 길은 꼭 한국 국적을 달고 세계 무대서 뛰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글로벌 시대, 글로벌 시티즌이 주목 받고 있는 지금은 ‘국적(nationality)’이 아닌 ‘정체성(identity)’으로도 한국의 국가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일조할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미국의 외교 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연방 국무부(The Department of State·DOS)에서 활약 중인 한인 외교관들을 주목할 만 하다. 대표적인 한인 인사로는 성 김 주한 미국대사 지명자가 꼽힌다. 아직까지 인준이 지연돼 서울 부임 시기가 연기된 상태지만 한국계 첫 주한미대사로 지명되면서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북핵 특사를 역임한 그는 국무부가 외교관들에게 직책과 별도로 부여하는 참사관급(Class of Counselor) 고위 외무공무원이다. 관계자들은 “정확한 인원은 파악하기 어려워도 대략 국무부 소속 한인 외교관들은 20~30명”이며 “한국계 외교관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라고 전했다. 특히 각 부서에서 30, 40대의 1.5세 혹은 2세 등 젊은 한인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워싱턴DC의 국무부 건물에서 전세계 국기가 펄럭이고 있는 로비 배경을 뒤로 하고 줄리아나 김·세실리아 최 외교관과 인터뷰를 가졌다. 한국계 미국인, 그리고 미국 외교관으로서 전세계를 누비고 있는 이들은 ‘코리안 파워’를 실력으로 입증하고 있었다. 이들은 한 결 같이 “한인이란 정체성에 자랑스럽다”며 “미국의 외교관으로서 한인이란 정체성은 다양성에 대한 존중을 넘어 두 팔로 환영하는 국무부에서 절대적인 플러스 요소”라고 강조했다. 또한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코리아 브랜드’ 가치를 알리는 한국 문화 전도사들이었다. 동료들과 불고기나 김치를 먹고, 한국 영화를 보는 소소한 일상을 통해 ‘한식의 세계화’와 ‘한류’에 기여하고 있었고, 부모나 가족을 통해 습득한 한국 문화와 정서는 언어와 문화 차이로 생길 수 있는 양국간의 오해를 풀 수 있는 해결사 역할을 해냈다. 최 외교관은 “젊은 한인들이 한국 문화유산과 정체성에 자랑스러워해야 한다”며 “진정한 다양성은 자신만의 색깔을 지니고 다른 이들과 조화를 이룰 때 돋보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12년간 학교 교사에서 비영리단체 책임자를 거친 뒤 국무부 일원이 된 김 외교관은 “한국계 외교관으로서 양국의 화합을 위한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데 큰 보람을 느낀다”며 “앞으로 더 많은 한인 후배들이 뿌리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미국을 대표하는 외교관에 도전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성은 기자

2011-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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